2007년 여름에 시작 된 금융위기. 미국에 국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어떻게 월가의 거대한 회사들을 부도로 몰아가고 대서양의 은행들을 국유화시킬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걸까?
돈이 우리 삶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 과정과 오랜 세월 이어진 금융사의 뒷 이야기
은행의 지원으로 르네상스 운동이 전개되었고 채권 시장 움직임에 따라 전쟁 승패가 갈렸다.
주식시장 기반으로 대형제국이 형성 되었는데 화폐가치의 붕괴가 프랑스 혁명을 초래한 것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 런던에 이르기까지 돈의 번영은 곧 인간의 번영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융사는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였다.
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약 500년전 잉카제국 : 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잉카인들은 귀금속을 미적가치로만 평가했고 금은 햇님의 딸, 은은 달님의 눈물 로 불렸다. '노동력'이 가치의 단위였던 시대이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스페인 정복자들이 엘도라도 전설을 따라 잉카를 찾아왔다. 이후 잉카제국을 정복, 페루 수도 '리마'를 건설하고 본격적으로 금을 찾아 나섰는데 스페인 정복자들은 '부의 언덕'이라 불리는 쎄로리꼬 산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스페인 통치 250년 동안 안데스 산맥 광산에서 6만 2천톤 이상의 은을 채굴했다. 잉카인들은 유럽인들이 왜 금과 은에 열광하는지 몰랐지만 피사로에게는 금과 은은 곧 돈이고 가치의 저장소,계산의 단위,휴대가능한 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통치자들은 강제 노동제를 운영, 원주민들을 학대하다싶이 광산에서 일을 시켰고 캐낸 은을 정제해 은괴, 은전으로 만들어 유럽으로 보냈다. 스페인 왕가는 탐욕에 빠져 꿈꾸던 이상으로 부유해졌으나, 막대한 은으로도 스페인 제국의 경제적 정치적 몰락을 막을 수 없었다. 은의 가치를 하락시킬정도로 지나치게 채취한 것이 문제였는데 그들은 돈은 그 교환가치 만큼만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영국의 20파운드 지폐에는 '소비자의 요구시 20파운드를 지불할것을 약속합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지폐는 아무가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불하겠다는 약속일뿐이다. 미화 10달러 지폐 뒷면에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라고 쓰여있지만 우리가 믿는 '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현재 종이 화폐에 만족 중이고 놀랍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돈에도 만족한다. 모두 신용만으로 가능한 일이고 만질 수 없지만 그저 믿을 뿐이다. (ex.외환딜러)
바로 이 점이 스페인 정복자들이 간과한 부분이었다. 돈이란 곧 '믿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화폐를 발행한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 수표를 발행한 은행에 대한 믿음 등 돈은 금속이 아닌 '믿음'인 셈이다.
오늘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 즉, 신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세계 경제사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현대 문명은 '대출'과 '차용'에 아주 의존적이다.
그러나 초기 대부업자들은 환영 받지 못했다. 왜였을까?
일단 이탈리아의 금융역사부터 알아보자. 서기 1200년경 이태리 북부지역에서는 도시 국가들이 난립,서로 믿지 못하던 위험한 시절이었다.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단위가 커지면 계산 복잡해지는 숫자체계'였는데, 각기 다른 주화가 유통되던 '피사'에서 상인들을 중심으로 숫자정립 필요성이 절실했다. 간단한 거래에도 주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동방지역 이슬람제국, 중국 송나라 경제활동은 훨씬 발달했고 유럽은 근대적인 재무체계 수입이 필요했다. 이 때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같은 젊은 수학자가 탄생했고, 그는 아라비아 숫자가 로마숫자보다 우월하다고 증명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상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제시했는데, 로마시대 유럽인들 간단한 셈도 어려워하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계산이 쉬웠다. 피보나치는 회계 환전 이자계산에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하며 이후 수학응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금융제도 발전하기에 적합했다. 피보나치의 고향 피사도 마찬가지였다. 베네치아는 동양과 거래가 활발한 대부업의 실험장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네치아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떤 대출이든 예상치 못한 위험 생길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그 보상은 '이자'라고 불린다. 왜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 즉 목숨을 원했을까? 셰익스피어는 왜 이런 악명높은 대부업자를 희곡에 등장시킨것일까? 그 이유는 샤일록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베네치아에 2주이상 머물게 되면 등에 커다란 노란색 모자를 그리거나 노란모자를 써야했고 특정지역 '게토 누오보'에 갇혀 살았는데 베네치아에서 유대인의 존재가 용인되었던 이유는 기독교도 상인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대금업이었다. 피보나치가 이자는 계산했지만, 그 이자를 거둬들인 것은 샤일록이었고,유대인들이 앉아서 거래하던 의자 (이태리어로 banco방코)는 현재 영어 'bank뱅크'의 어원이다. 상인들이 왜 유대인들에게까지 돈을 빌렸을까? 이자를 받는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에 대한 중세교회의 엄격한 제한은 유럽의 금융발달을 저해시켰다. 단테 '신곡'에 따르면 제7지옥에는 고리대금업자를 위한 자리가 따로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고리대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받았고 유대인하면 '돈' 이라는 고정관념도 수백년동안 사라지지 않았다.그러나 그 당시 고리대금업은 유대인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경제활동이었다.'베네치아의 상인'은 경제학과 유대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그토록 멸시하던 유대인의 돈을 왜 그렇게 성실하게 갚았을까?
오늘날에도 원시적 형태의 대부업 찾을 수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않으면 손해가 크기 때문에 대부업자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해지고,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에서부터 21세기 스코틀랜드에 이르기까지 고리대금업자들은 천대를 받았다. 금융서비스 제공을 하는 대신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부업자들은 덩치를 키워 강해짐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은행을 만들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합법적인 은행이 생김과 동시에 메디치 가문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메디치가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가로 '동방무역'과 '금융업'으로 번성 했는데 이와 함께 신용의 시대가 도래한다. 대부업은 과거와 달리 영광스러운 일이자 새로운 권력의 수단이 되었고 메디치가의 권세는 피렌체 곳곳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약 400년동안 메디치가의 딸들은 왕실로 시집을 가고 아들 셋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마키아 벨리(군주론 저자)는 메디치가의 역사를 기록했으며 메디치가는 미켈란젤로부터 갈릴레오까지 르네상스시대 전체를 후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1390년대 이전만 해도 메디치가는 동네 불량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믿을만한 금융서비스가 아닌 폭력으로 유명했고, 피렌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벌로 17년간 메디치가 사람 5명이 사형당했다.그러던 중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등장했는데 그는 거리에서 소규모 사업을 이끌던 메디치가를 명가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메디치가 영업을 합법화하는데 힘썼고, 결국 고리대금업 방지법을 피할 수 있는 독창적인 회계법으로 그 꿈을 이룬다. 메디치 은행의 장부를 보면, 대외 무역거래에서 '상업 어음'의 중요성을 확인 가능하다. 당시 교회는 대출이자 받는것을 금지했지만 상인은 무역거래에 필요한 환전서비스를 놓치지 않았다. 이자는 없으니 죄는 없었고, 환전의 대가로 적은 수수료를 받았다. 가불을 받을경우 그 기간만큼 수수료가 붙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메디치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에게도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졌다.이자가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신용을 사고 팔았는데 이것이 고리대금업이 은행업으로 진화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리브로 세그레토 (지오반니 메디치가 집필한책 : 메디치 은행의 성공담) - 메디치 은행의 비결은 규모보다 다양화를 추구한데 있다. 이전의 이탈리아 은행은 개별 사업체였기 때문에 단 한건의 불량채권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메디치 은행은 조합형태로 운영되는 분권 체제였고 이것이 엄청난 수익의 비밀이었다.
메디치 은행은 지오반니의 통솔 아래 '피렌체-베네치아-로마'까지 영업망을 넓혀나갔는데 이로써 규모확장과 분산을 통해 대출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었고 곧 채무자의 비용을 낮추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것이 고리대금업자와 은행의 차이이며 곧 샤일록과 메디치가의 차이인 것이다.
1429년 지오반니는 후계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금융 기준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오반니는 은행업을 떳떳한 장사,돈이 남는 장사로 만든 사람이다.
그의 아들 코시모를 통해 부의 축적은 자연스레 권력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부친 사망 20년후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군주나 다름없어졌는데 교황은 말했다 '정치는 코시모의 집에서 이뤄진다. 그가 선택하는 이가 관직을 맡고 법도, 전쟁도, 평화도 모두 그가 결정한다. 우리가 부르지 않을 뿐, 그가 왕이다.' 150년만에 메디치가는 유럽금융계의 큰손으로 탈바꿈한것이다.
즉 메디치가에 의해서 현대 금융업이 탄생했고 돈으로 정치 권력을 손에 거머쥔 세력은 메디치가가 처음이었다. 금융의 세계는 클수록 좋다는 원칙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규모를 키우고 사업을 다양화 시켜서 위험을 분산하고 대출뿐만 아니라 외환업무에도 집중함으로써 불량채권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메디치가도 귀족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빌려줬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돈을 갚지않는 귀족들은 돈을 받으러 온 태연한 얼굴로 은행직원을 쫓아냈다. 은행가는 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였으나, 세계 경제의 판도는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크게 달라졌다. 미국은 채무를 발판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메디치 은행이 부유층을 상대한 반면, 미국 은행은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줬다. 멤피스는 파란 스웨이드 신발,립 바비큐 구이,파산자 들로 유명하다. 멤피스 사람들은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데 저소득자에 대한 세금감면 서비스를 알려주는 세무사가 있고 차량소유권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급여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가게도 있고 백화점만한 전당포도 있다. 전당포에 맡길 만한게 없으면 25달러씩 받고 피를 팔 수도 있다. 곧, 파산자들을 상대로 먹고 사는 경제인 것이다.
한편, 글래스고의 동쪽 끝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대부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터득했다. 파산의 도시에서 차를 회수당하는 일은 흔하며 자동차 회수 연합은 매주 차량 500대 가량을 되판다. 자동차는 경매로 팔리고 새 주인 역시 대출이자가 밀리면 그 차는 회수되어 재활용 된다. 멤피스 지역의 이 같은 일들은, 다른 채권 회수자들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 불량 채권의 회수와 담보물의 재판매가 모두 쉽게 이뤄진다는 점이 다르다. 이 곳 주민들은 빚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안에 남는 물건없이 모든걸 회수당하고 나면 파산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작년 한해, 테네시 주민중 만 3천명의 주민이 파산신청을 했다. 파산자들은 매주 변호사와 만나 채무이행 계획을 세운다. 미국에서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매년 백만건~2백만건에서 파산신청. 대부분 돈을 갚는대신 파산을 선택하는데 중세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파산은 경제적으로 무척 심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은 빚을 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처럼 빚을 갚지 못하면 끌려가는 채무자 감옥도 없다. 1898년 부터 모든 국민에게 파산법 7장과 13장에 따라 채무청산과 개인회생 신청이 보장됐기 때문인데 이는 곧 인간이 태어날때부터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천부인권에 파산권도 추가된 셈이다.
미국의 법은 기업가를 위해 존재한다. 새로운 사업이 가능하게끔 하려고 한두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번의 실패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방지하고 오늘의 파산자가 내일의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는것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초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많다. 이들의 성공은 실패 후 재기의 기회가 주어졌기에 가능한데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가운데 일부가 연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파산법 13장에 따르면 채무를 없애는게 아니고 채무 이행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 뿐이다. 안토니오처럼 대부업자를 흡혈귀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대출은 경제성장의 기초 하지만 은행의 출현이 가능해야 고리대금업에서 한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채무자들이 정상적으로 대출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고리대금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투자자도 돈을 믿고 맡길 은행이 있어야만 지갑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이 해결책이라면, 왜 다들 파산 신청을 했고 금융위기가 터졌는가?
멤피스의 불량채권이 세계적 금융위기를 야기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이 증권형태로 바뀌어 무분별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면서 은행과 채무자의 정상적 관계가 깨졌기 때문인데 과거에는 은행업이 아주 간단했다. '3.6.3의 법칙' 즉, '예금이자는 3% 대출이자는 6% 오후 3시에는 골프치러간다.' 는 뜻. 요즘들어 금융업이 지나치게 복잡해졌고 연이은 금융혁신으로 멤피스같이 가난한 동네의 가정에서 받은 주택 담보대출을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부증권' 같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투자상품으로 바꿔버렸다.
납을 금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우량 채권으로 만드는 금융연금술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과 함께 현대 금융의 양대축을 이루는 채권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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