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_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세상을 구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이야기
- 경제위기가 닥칠때 급진적 사상가가 다시 주목받곤 했다.
경제학의 창시자/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 (1723-1790)
글래스고 대학에 철학교수로 있었다.
<도덕감정론, 1759> Theory of Moral Sentiments
-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ㄴ이것이 가능한 것은 공명정대한 관찰자(The real and impartial spectator)가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국부론의 시작
공작 아들의 가정교사로써 유럽을 여행하며 견문록을 쓰기 시작했다.
#18세기는 변화의 시대
18세기는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막 시작된 시기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시작되어 생산량이 늘고 늘어난 생산품을 팔기 위해 더 넓은 시장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시장이 활발해졌다.
아담스미스를 가장 화나게 한 건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금과 은을 중시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한 나라의 부(국부)의 기준은 금고에 얼마나 많은 금/은이 쌓여있는지가 결정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케네를 만났다. 케네는 원래 루이15세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케네혈액론 :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연구했는데, 사람이 식량을 먹어야 살 수 있듯 사회도 마찬가지고 인간이 노동을 해서 식량과 원료를 얻고, 상품을 유통시켜야 사회가 성장한다. 사회는 3계급으로 이뤄져 있고 화폐는 그 세개의 계급사회를 돌며 생산물을 공급한다. 마치 혈액처럼.
케네는 중농주의를 주장했다. (중농주의 : 토지만이 부의 원천이다.)
여행에서 집에 돌아와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항구가 있는 글래스고는 담배 수출입의 중심지로 경제적 부흥이 시작됐다.
데이빗 흄(인성론 저자)과도 자주 교류했는데 흄의 가장 큰 공헌은 그의 실증적인 철학이었다. 머릿속의 구상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보고 현상을 이해해야한다고 말했음. 흄의 실증철학이 아담스미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조지프 블랙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허턴(영국의지질학자)
1977년 3월 국부론이 탄생했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으로 밝히고자 했던 것은 국부를 증진시킬수 있는 하는 방법이다.
그는 어디서든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부'를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 이라고 새롭게 정의.
프랑스와 케네는 부는 농업만이 만든다고 주장했지만,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만든다고 주장. 중상주의를 정면으로 반박 했다.
또한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기므로 상품가치는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량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 :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않는 손이 있어서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게 한다. 따라서 자유로운 시장만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완전한 자유 시장 체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는 한번 밖에 안나오지만 이로 그의 꿈을 설명할 수 있다.
국부론은 근대경제의 기본원리를 설명했다.
분업과 국민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보호무역의 문제점들, 지난 수십년간 경제학 교과서가 됐다.
따라서 철지난 고전이라고 하기 힘들다. 최초로 자유시장체계를 형성한 기본 틀. 지금도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국부론 출간 이후.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를 못마땅하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미스의 사상이 많은 오해를 받게 되었다.
자유무역 신봉, 거대정부 반대,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함에 따라 '돈많은 부자들의 편'이라고 오해를 받았다.
자유로운 개인의 이익 추구 라는 부분은 가장 큰 오해를 낳는데,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한다고 이야기 함 따라서 인간의 이기심을 허용한 적이 없다. 이는 그 전에 쓴 도덕감정론의 주장과도 일치 -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체제를 추구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체계의 한 부분인 것이고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것이다.
둘 중에 한 권만 읽어서는 알 수 없어요. 도덕감정론의 이론이 국부론에서 다시 등장하거든요. 빈민에 대해 연민을 느끼죠. _개빈 케네디
아담 스미스는 자유 시장 경제가 대중을 돕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우리 마음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기적인 행동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는 단 한번도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등에 대해 실망했다.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말 중 가장 유명한 문구 '국민이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국부론의 원제는 WEALTH OF NATIONS 복수형이다. 즉 특정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여러 국가와 국민이 잘 사는 것을 연구한 책이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 체제는 19세기를 거치며 점차 자본주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나,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은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이 위기도 아담 스미스처럼 인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한 위대한 경제학자를 탄생시켰다 :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
보통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면 혁명적인 정책이나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최초로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계일까?' 하는 새로운 의문을 던졌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가 기계 부품처럼 변한 것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 했다.
청년시절에는 해겔의 변증법에 빠져있었음 - 세상의 모든 것, 인간 자연 사회 모든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의 법칙으로 끊임없이 변화,발전 한다는 철학
하지만 세상을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가 세계 밖에 존재하는 '절대정신'이다. 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이에르바하의 주장 : 유물론 -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고 이끌어간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변증법+유물론을 합쳐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
1843년 독일 쾰른 (급진적 반정부 신문인)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무신론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계를 꾸리려고 언론계로 발을 들였다.
그 때 정치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고 기자로써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라인신문 폐간 후 파리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공산주의를 접하고 엥겔스를 만나게 되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같은 역할이었고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쓰길 바랐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다.
마르크스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위외에 다른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인, 즐거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점차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바뀌게 됨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서로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계급없는 공산주의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혁명을 준비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 -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을 밝히는 선언문을 쓰게 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노동자가 잃을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의 사슬뿐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개선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변화가 가능한것을 연구하고 위기와 탄압을 겪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그 당시 혁명에 참여했고,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명성을 동시에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잇따른 추방령이 내려지고 결국 혁명은 실패했다.
마르크스는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다.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기도 했지만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렸다.
이후 유산과 엥겔스의 도움으로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
생활이 안정되자 자본론의 집필 시작/ 낮엔 대영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주말엔 소풍을 가거나 다른 독일 이민자들과 교류. 사회적인 사람이었음
그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하게 분석,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
따라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번 읽었음.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도 국부론이었음
1876년 15년 이상을 바친 자본론이 출간됨 - 마르크스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연구에 최초로 적용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
그가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룬것은
상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는 노동을 통해 생산된 것이다.
따라서 상품가치는 상품생산에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신발을 6시간동안 6켤레를 만들었다면 신발의 가치는 1노동시간
화폐 =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
돈이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폐의 물신성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르도 노동 가치론을 이어받아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든다고 했다.
그는 왜 쉬지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가난하고 놀고 먹는 자본가들은 왜 부자일까 생각하다가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를 다룬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려서 생기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주머니로. 왜 노동자는 거부할 수 없나? 자본가가 해고를 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부를 얻게 되었다.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면 노동 생산성을 높임 : 필요 노동시간이 줄고 잉여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되며 노동자의 임금은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부를 얻게 되었다.
(노동자 :빵1개 만드는 시간동안 기계는 3개 만들수 있을때 상대적 잉여가치 발생)
-상대적 잉여가치(특별 잉여가치) : 필요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잉여노동시간이 늘어나 생기는 잉여가치
칼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했다. 착취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의 이기심 때문에 기계가 계속 노동을 대신하며 실업률이 증가한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짐으로 (실업자증가) 임금은 하락하고,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기에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인 공황이 시작, 노동자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자본주의 붕괴 후 사회주의 사회의 등장을 예견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 과정으로 보고 봉건제 이후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는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구조를 설명했다.
<마르크스의 딸 제니와의 고백게임>
제니 : 아빠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마르크스 : 싸우는 것
제니 : 그럼 아빠가 생각하는 불행이란 뭐예요?
마르크스 : 굴복하는 것이지
제니 :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마르크스 : 책장에 파묻히기
그의 사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1885년 자본론 2권 : 자본의 유통과정, 1894년 자본론 3권 :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을 발간했다.
그리고 자본론은 사회주의의 성서로 불리우며 성서보다 더 많이 팔렸다.
또한 한세기가 흐른 뒤 레니를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나 과연 그들 중 한명도 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 있었을까?
칼 마르크스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도와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세상을 해석한 철학자이며,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경제학자기이도. 공산주의 국가 탄생에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다. 물론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가 철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북한과 대립중인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 수 있지만 그는 오랜 세월동안 입밖에 내서는 안 될 인물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붕괴할 것이라는 국가들은 위기를 겪거나 휘청였으나 아직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들은 독재와 빈곤에 시달리다 20세기 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경쟁에서 승리하자 자본주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와 그의 책들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자본주의는 건재하고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다면 아직도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론은 가치가 없는걸까?
자본주의는 위기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음. 그게 가능했던 것은 마르크스가 했던 자본주의의 경고와 메세지 덕분이기도 하지 않을까?
물론 자본론의 가치를 마르크스의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두고 말할 수도 있으나 마르크스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자본론을 쓴 것.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전에 주목해야 할 가치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꿈꾸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펼쳤던 이상적인 사회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상의 시작점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을까 를 고민했다. 사고의 시작이 달랐다.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를 오해했고 공산주의도 칼 마르크스를 오해했다
그들에겐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그렸던 세상은 끝없는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소수지배의 독재사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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